마음공부,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

자신 스스로와 어떤 다짐을 해야 할까?

「마음공부, 나를 책임지는 진한 다짐」

인생을 보다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인생 철학을 담은 창작글로 위 주제를 대신한다.


나는 마인디스트 민혁이다.

난 그동안 스스로의 대화를 통해 34살이라는 겉 나이와는 다르게 마음의 나이를 꾸준히 높여 왔다. 이 말부터 사람들은 분명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싶을 테지만 그냥 이해보다는 마음으로 들어 주길 바란다.

세상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 허술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대로 안된다며 스트레스 받아하는 주변에 모든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어떠한 말로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하나부터 열 가지 말해줘 봤자 이해 못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만 사는 그들에게는 타협이 당장은 불가능한 결론을 내려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겠지만 사람은 사람마다 다른 건 분명 맞지만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사람마다 수준이 분명 다 다르다. 하나의 사물과 상황을 볼 때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불안함을 늘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나 자신을 스스로 공부한 적 없는 사람들이 겉의 나이와 머리만 성장시켜 왔을 텐데, 아마도 세상의 경우에서 순간 이해가 되질 않는 모든 것에 부정적인 기준으로 대응해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래서 정말 허술한 인생이라 표현한 것이다. 누구의 말이 맞다 아니다를 정하는 기준에서가 아니다. 무엇이 정답이다 아니다도 아닌, 과연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봐야 정확한 기준들인지 나의 창작 글을 통해 증명해 보고 싶다. 다음 글을 통해 확인해 보길 바란다.


출처 : google 캡처


위의 첫 번째 고생이라는 키워드를 살펴보자.


1. 지나쳐간 시간이 '고생'이 되지 않도록 이 말은


나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대부분 고생하면 낙이 오는 줄 알겠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분명 고생하면 계속해서 고생하는 인생이라서 그렇다. 어떻게 하면 고생 뒤에 낙이 올까? 그 명확한 해답은 바로, 정확히 고생해야 인생에 낙이 온다고 산증인으로서 감히 말해 주고 싶다.

나는 그동안 정확히 고생해 왔다고 모두에게 당당하게 말해 주고 싶다.

과연 어떻게 해야 정확히 고생하는 것인가? 말하자면 길지만 간추려서 말해주겠다. 

선택함에 있어 적어도 5가지 이유를 성립할 수 있는 오행의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며 평생 긴장하면서 살아간다면 지혜롭게 모든 상황을 내 뜻을 담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긴장하면서 살면 좋은 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실수를 안 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모든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없던 기회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위에 말처럼 살아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금의 고생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계속된 고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비참한 현실이지만 반드시 그럴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지금 와서 보면 낙이 오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낙이라면 자식 잘 키워주신 보람에서의 낙이시겠지만 정말 많은 고생만 하셨던 우리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의 주변, 내 모든 주변의 사람들이 정확히 고생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지나쳐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미련하게 고생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으로


출처 : google 캡처


2. 허술했던 기준이 '고집'이 되질 않도록 이 말은


나 또한 그랬고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허술한 기준을 가지고 생 떼를 쓰며 사는 것일까? 모두가 인정이 될 만한 큰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지혜롭게 실천한다면 주변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고집, 아집이라는 단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이 단어는 절대 만들어 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과연 자신의 기준을 어떻게 허술한지 알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 성장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마음, 다양한 학문에 관심 갖고 터득해야지만 그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경지에 통달한 사람은 과정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못된 욕망, 오만한 기준들이 겉어지고 세상을 보다 높은 중심에서 지혜로운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훈련을 거친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의 기준, 모두가 자신의 욕심으로 가득찬 이기적인 기준이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그럼?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참고로 난 그런 사람이다. 왜 우리가 고전에서 보아온 마음의 학문을 통달한, 공자, 노자, 맹자, 미륵과 같은 사람들을 역사 속의 인물로서만 섬겨야 하는 것인가? 현대판 공자, 맹자는 없는 것인가? 혹시 이런 생각 해본적 있는가?

오로지 혜민스님만이 그 뒤를 잊는 뭔가 불교의 일환으로만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며 자연의 섭리를 무시해야 한다는 것일까?깊이 있게 내려가다 보니 말이 어려워진다. 아무쪼록 위에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준을 다시금 바라봐야 한다.

끊임없이 현재 자신을 의심하자. 1년 뒤에는 또다른 내가 완성될테니까. 그럼 지금은 당연히 어설픈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주변의 이야기가 더 수월하게 들릴 테니 말이다. 

자신의 중심이 없어진다고 생각지 마라. 단, 주변의 제3자의 기준을 잠시 빌려와 좀 더 자신의 주제 파악을 해간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어설픈 기준 따윈 점차 없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끝으로,


출처 : google 캡처


3. 상처받은 마음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나를 책임져라. 이 말은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 그 순간의 상처를 고통으로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상세하게 말을 풀어 본다면, 상처는 그 순간이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해서 내 어리석은 기준으로만 세상을 살다 보면 나한테 이로운 것이 아니면 전부 고통이 되니, 자신의 뜻에 욕심을 담아 살아봤자 모든 게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다 현명하게 책임지는 방법론으로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고통이라는 이물질을 마음에서 떨쳐 버릴 수 있고 깨끗한 마음으로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위에 말을 보다 명심하며 세상을 통찰해 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글을 쓰고 있지만 정말 일반 사람들이 느낄 때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쉽게 풀이된다면 어찌 깊이가 존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형용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표현에 정확성을 부여하기 이전에 수준이 맞아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표현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집중한다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와 패턴들이 천천히 익숙해져서 느낌으로 어떤 것인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라 보이는 바이다. 

절대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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